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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참호: 영하의 온도에서 아열대 식물을 기르는 법

20세기 초중반에, 소련의 과일 학자들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온도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아열대 식물을 길렀다. 추가로, 유리온실이나 화석연료의 도움 없이 길렀다. 이 기사는, 그 과정과 원리를 설명한다.

사진: 투압세(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에 있는 과일 참호
사진: 투압세(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에 있는 과일 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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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러스[1]의 과일들(오렌지, 레몬, 만다린, 귤, 자몽, 라임, 포멜로, 등)은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작물이다. 시트러스들은 서리에 약하고 열대/아열대 기후에서만 자랄수 있지만, 그 외의 기후에서도 화석연료로 난방하는 온실을 쓴다면 기를 수 있다. 시트러스들은 열대/아열대 지방에서 주로 자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중반에 더 추운 지역에서도 기르기 시작했다. 러시아인들은 화석연료와 온실 없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서 시트러스를 야외에서 기르는 데 성공했다. 그 농법을 이용하여 1950년, 소련은 3만 헥타르(약 9천만 평)나 되는 시트러스 플랜테이션을 가지게 되었으며, 거기서 년당 20만 톤의 과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1] 귤 속 나무들을 통칭하는 외래어 – 역자

소련에서의 시트러스 생산 증가

제 1차 세계대전 전, 러시아 제국 내에서의 시트러스 재배 면적은 고작 160헥타르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중 대부분이 조지아 서부의 해안가에서 재배되었다. 참고로, 조지아 서부의 해안가는 흑해와 캅카스산맥으로 인해 러시아의 평야와 시베리아에서 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을 수 있어서, 겨울 날씨가 온난하다.

그런데도, 시트러스를 기르는 데는 부적합한 날씨였다. 조지아 서부의 겨울 평균기온은 영상이지만, 최저온도는 영하 8도에서 영하 12도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서리는, 아주 적은 양이라도 시트러스에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에, 미국 플로리다의 거대한 시트러스 산업도 온도가 잠시 영하 3도에서 영하 8도 사이로 떨어졌을 때 완전히 파괴될뻔했다.

사진: 소련의 시트러스 재배 지역
사진: 소련의 시트러스 재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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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후로, 러시아인들은 시트러스 재배지역을 더더욱 추운 지방으로 퍼뜨렸다. 처음에, 시트러스 생산지는 온도가 영하 15도까지도 내려가는 흑해 연안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은 흑해 연안이 산으로 보호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동계올림픽이 있던 소치와 크림반도의 남부가 포함된다. 비슷한 시기에, 시트러스 생산지는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카스피해 연안으로 퍼져나갔다.

그 뒤, 시트러스 생산은 겨울 날씨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곳으로도 퍼졌고, 거기는 땅이 20~30cm 깊이로 오는 지방들이었다. 시트러스 재배지들은 더 퍼져나가 다게스탄, 트루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남부까지도 퍼져나갔다. 마침내, 시트러스 생산은 그곳들에서 점점 북쪽으로 퍼져서, 땅이 50cm 깊이로 얼고 겨울 날씨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까지 갔다.

추운 지역에서 시트러스를 기르는 것에 대한 장애물은 서리뿐만이 아니었다. 이 지역들은 폭염과 건조한 바람이 있었다.

수입의존에서 자급자족으로 가다

제 1차 세계대전 전의 러시아 제국은 시트러스 과일들을 대부분 수입해왔다. 주요 구입처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레몬)과 팔레스타인(오렌지)이었다. 매년, 약 2만에서 3만 톤 정도의 시트러스 과일들이 수입됐다. 러시아의 국민 음료인 차와 섭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차에 넣어 먹기 쉬운 레몬이 수입 비중의 약 75%를 차지하게 되었다.

러시아혁명과 러시아 내전 후인 1925년, 시트러스 재배는 소련의 계획생산 목표들 중 하나가 되었다. 소련 공산당은 어떻게든 시트러스 과일을 자급자족하려고 했고, 50곳이 넘는 연구소와 식물원, 그리고 시험재배지를 만들어서 시트러스 자급자족을 조금이라도 빨리 이루고자 하였다.

1940년이 되면, 소련 내의 시트러스 재배지는 1만7천 헥타르로 늘어나고 생산량은, 러시아제국 때 매년 수입하던 시트러스 양의 두 배인 4만 톤에 이르렀다. 1950년이 되면, 시트러스 재배지는 3만 헥타르로 늘어나고(56% 귤, 28% 레몬, 16% 오렌지), 생산량은 매해 20만 톤이 되었다.

사진: 신 아토스(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에 있는 레몬 플랜테이션
사진: 신 아토스(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에 있는 레몬 플랜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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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이렇게 많이 기르게 된 이유는 귤나무가 시트러스 작물 중 제일 추위에 강하기 때문이며, 자랄 수 있는 최저온도는 영하 2도이다. 반대로, 레몬은 시트러스 작물 중 제일 추위에 약하다.

러시아인들이 보통은 못 기를 조건에서 시트러스를 기를 수 있게 된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그들은 교배를 통해 추위에 강한 시트러스 품종들을 만들었다. 두번째로, 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가지치기를 해서 한파, 폭염, 그리고 바람에 강한 시트러스를 만들었다. 이런 가지치기의 결과로 덩굴처럼 생긴 시트러스가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25cm밖에 안 됐다. 세 번째로, 일반적으로는 식물을 안 기를 곳, 가장 대표적으로 2m 깊이의 참호 속에 시트러스를 길렀다.

단계적인 냉해 저항성 기르기

해외에서 수입된 시트러스 작물들은 흑해 연안의, 유난히 따뜻했던 몇몇 곳에서만 생존했다. 러시아인들은, 시트러스 작물들을 추위에 강하게 만들기 위해 “단계적인 냉해 저항성 기르기”라는 농법을 썼다. 이것을 통해, 추운 기후에 잘 적응하는 품종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여담으로 이 농법은 원래 포도나 살구를 위해 개발되었다.

이 방법은 시트러스 나무를 원래 위치보다 약간 북쪽에서 기른 뒤에, 씨앗을 맺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뒤, 수확된 씨앗은 이전보다 더 북쪽에서 기르고, 이 과정은 반복되어, 느리지만 꾸준히 시트러스의 재배지를 더 추운 곳으로 퍼뜨렸다. 이 방법을 이용하여, 로스토프(러시아의 도시)의 살구나무가 나중에는 650km 북쪽의 미추린스크(러시아의 도시)에서 길러질 수 있게 되어, 그곳에서 기를 수 있는 살구품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이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로스토프의 살구 씨앗을 바로 미추린스크에 심으면 살구가 나지 않았다.

사진: 왜소 품종의 자몽 나무
사진: 왜소 품종의 자몽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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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서 갓 발아된 어린 식물들이 처음 노출된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이 농법은, 시트러스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되어 높은 수확량과 좋은 과일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단계적인 냉해 저항성 기르기” 외에, 1929년 전후로 러시아 과일 학자들은 추위에 잘 저항하는 품종을 골라서, 가장 과일이 맛있는 품종과 교배시켰다. 이런 무차별 대입 방식의 품종 교배는, 거의 모든 시트러스 품종을 보유한 거대한 씨앗 은행으로 인해 가능했다.

왜소 품종과 반(半) 왜소 품종의 시트러스 나무

원래 전 세계의 시트러스 재배지에서는, 시트러스 나무의 가지치기를 거의 안 했다. 미국의 유명 식물학자인 Harold Hume은, “가지치기에 쓰는 정원용 가위는 시트러스 플랜테이션 근처에도 가져가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가지치기는 러시아 내에서의 시트러스 재배에 필수적이었다. 제일 먼저, 가지치기는 시트러스 나무의 높이를 줄였다. 레몬 나무는 보통 5m까지도 자라고, 오렌지 나무는 12m까지도 자란다. 반면에, 1920년 전에도 러시아인들은 1~2m까지만 자라는 왜소종과 반 왜소 품종 시트러스를 길렀다. 이 왜소종 나무들은 가지를 더쳐서 나무의 크기를 최대한 줄였다.

크기가 작은 나무들은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 번째로, 땅에 더 가까워서, 나무 위아래의 온도 차가 비교적 덜하고 나무가 견뎌야 할 바람의 속도도 비교적 느리다. 두 번째로, 작은 나무들은 여러 상황에서 보호하기가 쉽다. 아주 따뜻한 기후를 가진 지역에서는, 160헥타르 정도의 시트러스가 자랐는데, 플랜테이션은 주로 밭이나 산비탈에 위치해서, 좋은 기후가 있는 곳의 땅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다.

사진: Mikhail Beringov가 그린 “차크비 집단농장에서 귤을 수확하다.”
사진: Mikhail Beringov가 그린 “차크비 집단농장에서 귤을 수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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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때에, 플랜테이션의 각 시트러스 나무들은 짚이나 면직물, 그리고 가벼운 기둥으로 만들어진 구조물로 보호되었다. 또한, 플랜테이션은 바람을 막는 커튼으로 둘러싸여, 차가운 겨울바람과 덥고 건조한 여름 바람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이 커튼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을 플랜테이션 밖으로 내보냈다.

나무를 아주 빽빽하게 심어(헥타르당 최대 3,000그루)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폭염은 나무 맨 위에 있는 이파리에 하얀 페인트를 뿌려서 대비했으며, 하얀 페인트는 햇빛을 반사해서 온도를 약 4도가량 낮췄다. 이 모든 방법은 일반적인 높이의 시트러스 나무에도 통하지만, 그래도 높이가 아주 낮은, 1~2m 정도 높이의 나무에 하는 것이 제일 쉽고 값싸다.

덩굴 처럼 생긴 시트러스 나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곳에서의 시트러스 재배의 비법은, 바로 왜소 품종의 시트러스 나무를 더더욱 작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트러스 나무를 덩굴 형태로 가지치기하여, 높이를 25cm로 낮추는 것으로 달성했다.

덩굴 형태의 시트러스 나무(Creeping Citrus Trees) 가지는 두 가지 방법으로 형성시켰다. 첫 번째 방법은, 나무줄기가 땅에서 나오자마자 약간 굽혔다. 선풍기 형태로 누른 주요 나뭇가지들은 인공적으로 눌려서 땅에 닿고, 과일도 땅에 닿게 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10~15cm 높이의 줄기를 곧게 자라게 두다가 주요 나뭇가지들은 줄기에 90도 각도로 굽혀 거미 다리와 같은 가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 가지와 과일은 땅에 안 닿았고, 두 번째 방법이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었다.

사진: 덩굴 형태로 변형시킨 사과나무 Source
사진: 덩굴 형태로 변형시킨 사과나무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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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 형태의 시트러스 나무는 왜소 품종/반 왜소 품종 시트러스 나무보다 추위와 바람에 강했으며, 그 이유는 덩굴 형태의 가지가 여름에는 나무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10년간 진행한 실험 결과에서, 겨울 때엔 가지 근처의 공기는 2m 위의 공기보다 2.5~3도 더 따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 폭염 동안에는, 공기 기온 차가 20도나 되기도 했다.

바람에도 강했다. 땅에서 2m 높이의 풍속은 초속 평균 10.4m이었지만, 덩굴 형태의 레몬 나무 높이에서의 풍속은 초속 1.8m 밖에 안됐다. 이것은 나무가 수분을 잃는 것을 방지해, 물 소비량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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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덩굴 형태의 식물
사진: 덩굴 형태의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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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덩굴 형태 식물은 작은 크기로 인해 여러 상황에서도 쉽고 싸게 지킬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어떤 방법보다 효과적인 보호 방법이다: 흑해 연안의 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내려간 1942~43년의 겨울에, 면직물과 방풍 커튼으로 보호받은 덩굴 형태의 레몬 나무는 멀쩡했고, 비슷하게 보호한 일반적인 레몬 나무는 뿌리까지 얼어 죽었다.

의외로, 덩굴 형태의 시트러스 나무는 반 왜소종 시트러스 나무보다 수확량이 많았다. 열매는 더 빨리 익었고, 더 많이 났으며, 첫해 수확에는 더더욱 그랬다.

참호에서 시트러스 나무 기르기

위에 언급한 농법들 중, 땅이 얼고 겨울 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곳에서 사용할 만 한 농법은 없었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사용될 수 있는 유일한 농법은, 과일 참호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참호에서 기를 수 있는 시트러스 품종은 왜소종, 아니면 대체로 덩굴 형태의 품종이었다. 이 농법에서는, 낮 동안 흙이 흡수한 열이 시트러스 열매(와 나무)를 서리로부터 지킨다.

참호의 깊이는 겨울 온도가 얼마나 추운지, 땅은 얼마나 깊이 어는지, 그리고 지하수는 얼마나 깊이 위치했는지에 따라 0.8에서 2m까지 다양했다. 나무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심었다. 참호는 대체로 단면이 사다리꼴이었으며, 이는 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그랬다. 나무들이 한 줄이었을 경우, 아래 단면은 길이가 2m, 위 단면은 3m이었고 나무들이 두 줄이었으면 각각 3.5m와 4m였다

사진: 참호에서 시트러스 나무를 기르고 있다. 타슈켄트를 감싸고 있는 농업지대(콜호츠 스탈린)에서 찍음
사진: 참호에서 시트러스 나무를 기르고 있다. 타슈켄트를 감싸고 있는 농업지대(콜호츠 스탈린)에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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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는 구릉 지대나 평야에 위치했으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게 만들어 겨울에도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참호 안에 식물이 한 줄씩 있었을 때는, 참호들을 다른 참호들과 3~5m 정도 떨어뜨려 놓았으며, 두 줄씩 있었을 때는 4~6미터씩 떨어뜨려 놓았다. 참호는 서로와 연결될 수 있었고, 이렇게 하면 식물을 돌보기가 훨씬 쉬웠다.

사진: 참호 속의 시트러스 재배지, 오데사, 1956
사진: 참호 속의 시트러스 재배지, 오데사,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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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들 사이의 땅에서, 인삼밭에서 볼 수 있는 천 그늘을 놓거나 그늘을 만드는 식물의 재배를 했으며, 이것들은 참호 내의 습도를 높이고 시트러스 나무들이 폭염에 노출되는 것을 막았다.

참호를 보호하다

여름 동안에, 참호 속 식물 등은 지상에서 기르는 “일반적인” 식물들과 같은 조건에서 길러졌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참호들은 2cm 두께의 나무판자와 기후에 따라 볏짚 한단, 또는 두 단으로 덮였다. 이것은 참호 내에 흙의 열기를 보존했으며, 증발을 막았다. 만약 눈이 판자들을 덮었다면, 추가적인 단열이 가능했다. 판자들은 30~35도 각도로 기울였다. 겨울에 온도가 영상으로 오르면, 판자는 남쪽으로 열었고, 낮 중에는 참호를 완전히 열었다.

이 방법은 어느 식물에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시트러스 나무들은 가지 근처의 온도가 1~4 도중으로 유지되면, 아주 적은 양의 햇빛만으로도 3~4달 동안 살 수 있다. 이런 온도에서, 시트러스의 신진대사는 느려지고, 이것은 추위에 대한 내성으로 이어진다.

사진: 참호 속의 왜소 품종 시트러스 나무
사진: 참호 속의 왜소 품종 시트러스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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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시트러스 나무를 참호 속에서 기르다
사진: 시트러스 나무를 참호 속에서 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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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꼭 필요할 때만 썼다. 나무판자는 서리를 잘 막았고, 더 쌌으며, 근처에서 바로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식물들은 약간의 빛이 필요해, 참호의 지붕 중 1/4은 유리 프레임으로 만들어 졌고, 이것들 또한 볏짚으로 덮었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흙과 점토로 덮었다. 창문과 환풍구는 최소한으로만 두었다.

덩굴 형태의 시트러스 나무를 참호에서 기르는 것은, 노동집약적이지만, 큰 투자가 필요 없는 간단한 농법이었으며, 높은 수확량(1년에 나무당 80~200개의 과일이 열렸다)과 좋은 질의 열대과일을 주었다. 모든 종류의 시트러스 과일은 참호에서 기를 수 있었다.

다른 농법들

참호 말고도, 소련의 과일 학자들은 다른 구조물을 이용해 시트러스 나무를 길렀으며, 모두 다 작은 나무들(주로 왜소종)에 효과적이었다. 몇몇 농법들은 (아주 약간의) 화석연료를 사용했다.

첫 번째 농법은 매년 시트러스를 다른 화분으로 이식하는 것이었다. 시트러스 나무는 여름에 밖에서 기르고, 겨울이 다가오면, 뿌리를 감싸고 있는 흙 채로 파내어, 겨울나기를 하는 창고에 이동되어, 밖이 따뜻해질 때까지 거기에 보관해두었다. 봄에는, 원위치로 옮겼다. 겨울이 비교적 따뜻했던 곳의 창고는 난방시설이 없는 목재 창고였다. 더 추운 지방에는, 난방되며 벽돌로 만들어진 반지하 창고였다.

사진: 리모나리윰(시트러스를 기르는 온실)의 모습
사진: 리모나리윰(시트러스를 기르는 온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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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러스 나무는 난방 없는 온실에서 자라기도 했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리모나리윰 (limonarium)”은 원을 반으로 자른 모양의 온실이었으며, 햇빛이 잘 드는 구릉 지대에 있었다. 나무들은 시렁 나무 형태로 길렀으며, 북유럽에서 벽을 타는 나무를 만든 것과 같은 농법이었다. 이 농법은 복숭아와 같은 지중해 과일을 고원지대에서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줬다 (english).

전기로 난방되고 이산화탄소와 습도가 조절되는 온실들은, 북극 지역에 있는 산업지대에서만 썼다. 마지막으로, 시트러스 식물들은 화분이나 박스에 담겨서 소련 전국의 아파트, 학교, 공공장소, 심지어는 공장의 온실과 작업소에서 기르죠 난방이나 공업 과정에서 낭비되는 열기(주로 증기나 뜨거운 물에서 낭비되었다)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런 농법들 중 자유무역 체제 아래에서 수익이 났을 농법들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많은 양의 연구와 투자가 소련 국내의 시트러스 생산을 이루기 위해 들어갔다. 대부분의 농법이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고 현지에서 재료를 조달할 수 있음에도, 노동집약적이었다. 결국,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소련 국내의 시트러스 재배는 추위뿐만 아니라, 해외와의 경쟁에서 보호되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출처

Les Agrumes en U.R.S.S., Boris Tkatchenko, in Fruits, vol.6, nr.3, pp.89-98, 1951. http://www.fruitiers-rares.info/articles21a26/article24-agrumes-en-URSS-1-Citrus.html & http://www.fruitiers-rares.info/articles51a56/article53-agrumes-en-URSS-2-Citrus.html

М. А. КАПЦИНЕЛЬ, ВЫРАЩИВАНИЕ ЦИТРУСОВЫХ КУЛЬТУР В РОСТОВСКОЙ ОБЛАСТИ РОСТОВСКОЕ КНИЖ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Ростов-на-Дону —1953. (“Growing citrus cultures in the Rostov region”, M.A. Kaptsinel). http://homecitrus.ru/books.html

Katkoff, V. “The Soviet Citrus Industry.” Southern Economic Journal (1952): 374-380. https://www.jstor.org/stable/1054452?seq=1. Full version here: https://sci-hub.tw/https://www.jstor.org/stable/1054452?seq=1

Volin, Lazar. A survey of Soviet Russian agriculture. No. 5.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1951. https://archive.org/details/surveyofsovietru05voli/page/n3/mode/2up. See page 151.

Мандарин – туапсинский господин?, СВЕТЛАНА СВЕТЛОВА, 16 ДЕКАБРЯ 2018 https://tuapsevesti.ru/archives/40995

http://www.agrumes-passion.com/plantation-entretien-f49/topic4913.html

https://www.supersadovnik.ru/text/yablonya-neobychnye-sposoby-formirovaniya-1003334

https://selskoe_hozyaistvo.academic.ru/2847/стелющаяся_культура

http://viknaodessa.od.ua/old-photo/